

일제 강점기시절 가는마을에 방배로 방질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친이 돌아가도 반반한 묘 자리조차 쓸 수없이 가난하여 아무도 묘를 쓰지 않는 ‘나붓등’에 초라하게 흙으로 덮어 놓았다. 세월이 흐르고 변함없이 방배를 타고 방질을 하던 어느 날 거물에 걸려던 금(金)궤를 건져 올린다. 졸지에 부자가 된 그 사람은 ‘나붓등’ 묘 자리가 명당이라 생각하여 부친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묘 자리를 봉분과 돌 비석을 세워 새로이 단장하고 영세한 방질로 끼니걱정에서 벗어나 정치망(定置網), 들망을 비롯한 어장사업으로 어장애비로 거듭나며 승승장구 해갔다. 지반이 약한 나비 꽁지부분에 세워진 비석은 세월의 무게와 함께 내려앉아 파도에 휩싸여 물속에 가라앉았다. 그때부터 어장은 고기가 들지 않아 빚더미에 시달리다 그 사람은 패가망신 하여 마을을 떠났다. 지금도 나붓등에 초라한 묘 자욱이 있고 사상누각(砂上樓閣)이라는 교훈을 간직한 채 비석은 마을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