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법을 이탈하는 유아적 텍스트, 과장된 구어체, 안무된 반복적 몸짓 등 1997년 극단 ‘첼핏쉬’를 설립한 이후 오카다 토시키가 발전시켜온 독특한 방법론은 후쿠시마 재난 이후 사회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짊어지며 또 다른 국면으로 펼쳐지고 있다. , , , 이후 한국에서 공연되는 다섯 번째 작품이자 아시아예술극장이 제작하는 신작에서, 오카다는 한국과 일본을 같이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엉뚱하면서도 적확한 모티브를 탐색한다. 바로 야구다. 야구 규칙을 모르는 여자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야구를 멀리하게 된 남자, 어쩌다 야구를 싫어하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 여성 야구팬 등 그가 그려내는 엉뚱한 캐리캐처는 일본과 한국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 봤음직한 익숙한 인물상들이다. 실제와 환상을 오가는 ‘국민적’ 기억과 사적인 추억들이 누적되면서 양국의 ‘야구 담론’은 스포츠 이상의 상징성을 향해 뻗어나간다. 어쩌면 야구는 다른 주제에 접근하기 위한 ‘맥거핀’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결국 미국이라는 커다란 존재에 직면하게 되겠지요. 우리 두 나라 중 어느 하나도 그 영향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나라.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 우리의 '위'에, '배후'에, '안'에 있고, 우리와 '함께' 있는, 미국. 이 커다란 영향력을 현재 우리의 상황과 관련 지어 보는 일은 과연 불가능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