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광대가 등장하여 관객들에게 농을 던지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 사이, 마을 아낙들이 등장하여 각자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누구네는 대출받아서 집을 샀네, 또 누구네는 쌀값에 기름값이 올라 살기가 힘이 드네 하며 투덜대던 아낙들은 이윽고 나랏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또 다른 광대가 나와 아낙들을 나무라고, 정조대왕의 업적에 대해 이야기하며 본 공연을 시작한다. 때는 영조대왕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영조는 하인 나경언의 고변에 사도세자를 불러 그의 죄를 묻기에 이른다. 어린 세손의 간곡한 외침에도 뜻을 굽히지 않던 영조는 결국 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세자는 끝내 뒤주에 갇혀 명을 달리하고 만다. 아비가 갇힌 뒤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울던 어린 이산은 훗날을 기약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영조 역을 맡은 광대, 어린 세손, 혜경궁 홍씨, 나경언, 신하를 맡은 광대들은 뒤주 주위에 모여 의아함을 표한다. 영조는 총명했던 어린 세자를 소론 출신 궁녀들의 손에 맡겼고, 영조는 사사건건 세자를 구박했을 뿐 아니라, 세자의 죄에 대해 고변한 자는 어느 집 하인이었는데 일국의 세자를 고발하였음에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당시 신하들도 영조를 만류했다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영조는 탕평책, 균역법, 삼심제, 신문고의 부활 등을 통해 후대에 칭송받는 임금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어린 세손은 즉위식을 맞이하고, 즉위식 자리에서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며 사도세자의 존호를 높이고 묘소를 격상시키고 묘호를 내린다. 뿐만 아니라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를 수원화성으로 천도하기에 이른다. 대신들의 염려와는 달리 수원화성은 채 3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완공되었고, 정조대왕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천봉한다. 애연가였던 정조가 곰방대를 입에 물자, 다른 광대가 나와 이를 만류한다. 저 멀리, 이선이 어린 이산을 데리고 즐겁게 무대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덧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다. 모두가 만수무강을 비는 가운데 부복하고 차마 일어나지 못하는 정조대왕. 혜경궁 홍씨는 노구의 몸을 움직여 아들을 일으켜 세우고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여느 모자와 다를 바 없는 다정한 모습이다. 그들을 지켜보던 광대들이 나와 풍악을 울리고, 마당에는 흥겨운 장단이 울려 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