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극단동 월요연기연구실이 소설,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를 만났습니다. 소설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는 작가가 이끌어가는 소설입니다. 작가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던 여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던져둡니다. 그리고 그 여성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때, 작가는 독자를 지켜보는 자로 두지 않고 함께 그 방법을 생각하고, 찾도록 유도합니다. 이것이『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설의 독특한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연극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가 관객과 만나게 될 방식입니다. 체르니셰프스키가 이야기를 작품의 중심이 아닌 토론을 위한 ‘샘플’처럼 사용했듯이 저희도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토론을 해보고 싶습니다.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속의 인물들, 당시 러시아 청년들이 했던 고민들을 빌려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고민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께요. 작가가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은, ‘부잣집 남자가 가난한 집 여성에게 청혼을 한다면 가난한 여자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의 의견이 다 다르듯이 소설 속의 여러 인물들도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답을 내놓습니다. ‘아직 새로운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시대에는 구시대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훔치고 빼앗아라. 그것이 행복이다’ ‘뭐가 너에게 가장 이로울지 생각해봐라’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 중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입장의 인물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물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객관화시킵니다. 다른 인물을 만나 논쟁도 벌이고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기도, 자신의 논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여성의 삶을 소설이라는 ‘장’에 던져놓고 선택의 순간마다 많은 의견들을 제시하고 가장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가도록 둡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길을 함께 걷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독자들은 생각합니다. 나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습관이나 제도에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 일일까? 편안한 것과 이로운 것을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 관객분들이 연극,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을 이렇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는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관객들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등장인물들의 토론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봅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입장을 찾아 함께 반론하고, 의문을 던지고, 받아들이고 혹은 변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단지 ‘그 공간’을 만들 뿐이고 나머지는 관객분들의 몫입니다.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는 단지 토론의 과정만을 ‘그 공간’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보통의 연극처럼 ‘이야기’를 보러 극장을 찾으신다면 당황스러우실 수 있습니다. 연극의 스토리는 오히려 단순합니다. 이야기입니다. 이 연극에서는 이야기 대신에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던졌을 법한 질문들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나에게 부잣집 남자가 청혼한다면 받아들여야 하나? 원하지 않는 결혼을 위해 부모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면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여자가 결혼을 하고도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용인에게 해고될 위험으로부터 나와 동료들을 보호할 방법이 있을까? 이미 결혼을 했는데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만 보면 선전포고가 민망해지게 진한 멜로드라마 같지만 우리는 이 질문들을 통해 다음 질문들에 닿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잘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정말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이 연극은 관객들과 함께 그 질문까지 도달하려고 합니다. 물론 어떤 답도 내릴 수 없습니다. 이 연극에는 어떤 단정도 없습니다. 어떤 입장을 주장하거나 일깨워지기를 의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질문과 그 질문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만 있습니다. 월요연기연구실의 연구원들은 답을 찾기 위해 공부를 계속 해왔습니다. 이제 쉬또젤라찌(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작품의 제목처럼 ‘무엇을 할 것인가’ 서로 질문하고 함께 고민해 보기를 원합니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한 대학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법령에 관한 대자보가 붙었습니다. ‘우리가 당신들한테 해결해달라고 하는 건 비정규직이다’라는 내용의 대자보였습니다. 우리는 그 대자보의 말하는 방식을 빌려오려고 합니다. 엄정한 내용을 엄숙하지 않게 이야기 하는 방식, 말하는 바를 간결하게 전달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러시아인 코스프레를 하고 계속 토론만 한다!? 매우 연극적이지 않나요? 앞에서 계속 강조해왔듯이 이 연극은 인물들의 스토리, 운명보다 ‘토론’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배우들은 인물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 합니다. 진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합니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브레히트 학습극’을 닮아 있습니다.
